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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더보기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더보기
대숲아래서 - 나태주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 더보기
초생달 - 김강호 그리움 문턱쯤에 고개를 내밀고서 뒤척이는 나를 보자 흠칫 놀라 돌아서네 눈물을 다 쏟아내고 눈썹만 남은 내 사랑 더보기
무화과 숲 - 황인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더보기
풀밭에서 - 조원규 풀잎들이 한 곳으로 쏠리네 바람 부니 물결이 친다고? 아니,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야 그해 팔월엔 어땠는 줄 알아? 풀잎들은 제자리에 미동도 없이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았었지 풀 비린내에 내 가슴은 뛰고 지평선은 환하게 더욱 넓게 시간이 멈추곤 했기 때문이야 이리 와, 껴안아 줘 더보기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 박민규 잠깐이다. 후회는 없다. 돌이켜보면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던 청춘이다. 경쟁자는 많고 취업은 힘들고, 세상은 엉망이었다. 잠깐이다. 잠깐이다. 잠깐이다. 더보기
눈이 멀었다 - 이정하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