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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나의 시 - 레너드 코헨 이것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시 나는 그 시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시인 모든게 엉망이었을 때도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약물에 의존하려고도 가르침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잠을 자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시를 쓰는 법을 배웠다 바로 오늘 같은 밤 바로 나 같은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를 이런 시를 위해 더보기
간격 - 이정하 별과 별 사이는 얼마나 먼 것이랴 그대와 나 사이, 붙잡을 수 없는 그 거리는 또 얼마나 아득한 것이랴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할 수는 없다 그 간격 속에 빠져죽고 싶다 더보기
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더보기
눈 - 김수영 눈은 살아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더보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더보기
안녕 - 원태연 사랑해 처음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난 그래 그래서 미안하고 감사하고 그래 우린 아마 기억하지 않아도 늘 생각나는 사람들이 될꺼야 그때마다 난 니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이렇게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잖아 생각하면 웃고 있거나 울게 되거나 그래서 미안하고 감사하고 그해 사랑해 처음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그래 더보기
여승 -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더보기
사투리 - 박목월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나는 머루처럼 투명한 밤하늘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디가 샛까만 뽕나무를 사랑했다. 혹은 울타리 섶에 피는 이슬마꽃 같은 것을…… 그런 것은 나무나 하늘이나 꽃이기보다 내 고장의 그 사투리라 싶었다. 참말로 경상도 사투리에는 약간 풀냄새가 난다. 약간 이슬냄새가 난다. 그리고 입안에 마르는 황토흙 타는 냄새가 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