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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대학시절 -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 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더보기
하늘 냄새 - 박희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더보기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더보기
소금같은 이야기 몇 줌 - 윤수천 이왕이면 소금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속에 묻어두게나 당장에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겠지만 지나고 나면 그것도 다 추억이 된다네 우리네 삶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즐거웠던 일보다는 쓰리고 아팠던 시간이 오히려 깊이 뿌리 내리는 법 슬픔도 모으면 힘이 된다 울음도 삭히면 희망이 된다 정말이지 소금 같은 이야기 몇 줌 가슴에 품고 살게나 세월이 지나고 인생이 허무해지면 그것도 다 노리갯감이 된다네 더보기
해당화 - 한용운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꼬츨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느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더보기
새 - 심보선 우리는 사랑을 나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아주 밝거나 아주 어두운 대기에 둘러싸인 채,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사랑해, 나는 너에게 연달아 세 번 고백할 수도 있다 깔깔깔 , 그때 웃음소리들은 낙석처럼 너의 표정으로부터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방금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 미풍 한 줄기, 잠시후 그것은 네 얼굴을 전혀 다른 손길로 쓰다듬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만났다 , 여러 번 만났다 우리는 그보다 더 여러 번 사랑을 나눴다 지극히 평범한 감정과 초라한 욕망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나는 안다, 우리가 새를 키웠다면, 우리는 그 새를 우울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의 창밖으로 날려.. 더보기
내가 너를 - 나태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더보기
저녁별 - 이정하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너를 바라보는 기쁨 만으로도 나는 혼자 설레였다 다음에 또 너를 보았을 때 가까워 질 수 없는 거리를 깨닫고 한숨지었다 너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내 마음엔 자꾸만 욕심이 생겨나고 있었던거다 그런다고 뭐 달라질게 있으랴 내가 그대를 그리워 하고 그리워하다 당장 숨을 거둔다해도 너는 그자리 그대로 냉랭하게 나를 내려다 볼 밖에 내 어두운 마음에 뜬 별하나 너는 내게 가장 큰 희망이지만 큰 아픔이기도 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