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썸네일형 리스트형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더보기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더보기 내 마음의 악마 - 정하 내 불행의 시작은 너를 알고부터 비롯된 게 아니고 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네 아아 어찌 용서받을까 내 탐욕의 마음이여, 몸뚱어리여 진실로 진실로 너를 가질 수 있음은 진정 너로부터 떠나는 데 있는 것인데 더보기 모과 - 서안나 먹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꺼멓게 썩어버리는 그런 첫사랑이 내게도 있었지 더보기 그 때 처음 알았다 - 정채봉 참숯처럼 검은 너의 눈동자가 거기 있었다 눈을 뜨고도 감은 것이나 다름 없었던 그믐밤길에 나에게 다가오는 별이 있었다 내 품안에 쓰러지는 별이 있었다 지상에도 별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더보기 나는 나의 시가 - 김남주 나는 나의 시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이나 끌기 위해 최신유행의 의상 걸치기에 급급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가 생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순수의 꽃으로 서가에 꽂혀 호사가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나는 또한 바라지 않는다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나의 시가 한과 슬픔의 넋두리로 설움 깊은 사람 더욱 서럽게 하는 것을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 눌린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미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배부른 자들의 도구가 되어 혹사당하는 이들의 손에 건네져 깊은 밤 노동의 피곤한 눈들에서 빛나기를 한 자 한 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여 읽을 때마다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더보기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더보기 행복한 짝사랑 - 문향란 알까요? 알리가 없죠 관심이 가는 쪽은 늘 이쪽이고 당신은 내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언제나 애태우며 사랑하는 건 이쪽이고 당신은 늘 행복한 웃음으로 타인들의 사랑을 받으니까요 알까요? 알리가 없죠 당신 앞에 서고 싶은 건 이쪽이고 오직 당신의 사랑을 바라는 마음뿐 일지라도 이내 마음 알리없는 무심한 당신이니까요. 알까요? 알리가 없죠 옷깃 스쳐 지나가도 모르는 척하는 당신이니까요 사랑하는 이쪽의 마음을 알리가 없죠 더보기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