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그림 같은 세상 - 황경신 추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추상화를 보면서 즐거워 할 수는 있죠 작품의 의도 같은 건 몰라도 작품을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람을 다 알아야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더보기
춘몽 - 김용택 꾸벅 졸다가 뚝 뜬 눈에 피어 있는 너는 어둔 밤을 지샌 꿈이요 다시 감은 두 눈에 들어온 한 낮을 지낸 꿈이요 내가 다시 잠들어 너를 잊어도 너는 내게 흰 꿈이로다 꽃은 꿈이요 깜박 속은게 꽃이라 더보기
꿈 - 조병화 내 손길에 네게 닿으면 넌 움직이는 산맥이 된다 내 입술이 네게 닿으면 넌 가득 찬 호수가 된다 호수에 노를 저으며 호심으로 물가로 수초 사이로 구름처럼 내가 가라앉아 돌면 넌 눈을 감은 하늘이 된다 어디선지 노고지리 가물가물 네 눈물이 내게 닿으면 난 무너지는 우주가 된다 더보기
일곱살 때의 독서 - 나희덕 제 빛남의 무게만으로 하늘의 구멍을 막고 있던 별들, 그날 밤 하늘의 누수는 시작되었다 하늘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었던가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하늘은 울컥울컥 쏟아져서 우리의 잠자리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들었다 그 깊은 우물 속에서 전갈의 붉은 심장이 깜박깜박 울던 초여름밤 우리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바닷가 어느 집터에서, 지붕도 바닥도 없이 블록 몇 장이 바람을 막아주던 차가운 모래 위에서 킬킬거리며, 담요를 밀고 당기며 잠이 들었다 모래와 하늘, 그토록 확실한 바닥과 천창이 우리의 잠을 에워싸다니, 나는 하늘이 달아날까봐 몇 번이나 선잠이 깨어 그 거대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날 밤 파도와 함께 밤하늘을 다 읽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그날 밤 하늘의 한 페이지를 훔쳤다는 걸, .. 더보기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정말 이상하다. 덩쿨과 돌은 모두 외롭고 나무들도 서로를 보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나의 생활이 아직도 활기에 찰 때 세상은 친구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지금 안개에 휩싸이니 그 누구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것들로부터 인간을 홀로 격리시키는 어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수가 없다.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정말 이상하다. 살아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혼자인 것이다. 더보기
지금 우리가 - 박준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더보기
얼레지 - 김선우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만 꽃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남해금산 잔설이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 피워내던 얼레지꽃 생각이 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 나를 키운 8할은 오빠들이다. 열아홉 이후에는 늑대소굴에서 살았다. 그들을 남자로 보.. 더보기
폭설 민박 편지 2 - 김경주 낡은 목선들이 제 무게를 바람에 놓아주며 흔들리고 있다 벽지까지 파도냄새가 벤 민박집 마을의 불빛들은 바람에도 쉽게 부서져 저마다 얼어서 반짝인다 창문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연필심이 뜨거워지도록 편지지에 바다소리를 받아적는다 어쩌다 편지지 귀퉁이에 조금씩 풀어 넣은 그림들은 모두 내가 꿈꾼 푸른 죄는 아니었는지 새.나무.별.그리고 눈 사람이 누구하고도 할 수 없는 약속 같은 그러한 것들을 한 몸에 품고 잠드는 머언 섬 속의 어둠은 밤늦도록 눈 안에 떠있는데 어느 별들이 물이 되어 내 눈에 고이는 것인가 바람이 불면 바다는 가까운 곳의 숲 소리를 끌어 안고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그러나 나무의 속을 열고 나온 그늘은 얼지 않고 바다의 높이까지 출렁인다 비로소 스스로의 깊이까지 들어가 어두운 속을 헤쳐 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