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oem

붉은 가위 여자 - 김혜순

 

저만치 산부인과에서 걸어나오는 저 여자
옆에는 늙은 여자가 새 아기를 안고 있네

저 여자 두 다리는 마치 가위 같아
눈길을 쓱 쓱 자르며 잘도 걸어가네

그러나 뚱뚱한 먹구름처럼 물컹거리는 가윗날
어젯밤 저 여자 두 가윗날을 쳐들고 소리치며 무엇을 오렸을까
비린내 나는 노을이 쏟아져 내리는 두 다리 사이에서

눈 폭풍 다녀간 아침 자꾸만 찢어지는 하늘
뒤뚱뒤뚱 걸어가는 저 여자를 따라가는
눈이 시리도록 밝은 섬광
눈부신 천국의 뚜껑이 열렸다 닫히네

하나님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나님이 키운 그 나무 그 열매 다 따먹은
저 여자가 두 다리 사이에서
붉은 몸뚱이 하나씩
잘라내게 되었을 때

아침마다 벌어지는 저 하늘 저 상처
저 구름의 뚱뚱한 줅은 두 다리 사이에서
빨간 머리 하나가 오려지고 있을 때

(저 피가 내 안에 사는지)
(내가 저 피 속에 사는지)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저 여자
뜨거운 몸으로 서늘한 그림자 찢으며
걸어가는 저 여자

저 여자의 몸속 눈창고처럼 하얀 거울 속에는
끈적끈적하고 느리게 찰싹거리는 붉은 피의 파도
물고기를 가득 담은 아침바다처럼
새 아가들 가득 헤엄치네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윈터바텀 - 신해욱  (0) 2020.11.22
비 - 김혜숙  (0) 2020.11.22
밀 어 - 강계순  (0) 2020.11.22
카오스 - K에게 - 진은영  (0) 2020.05.22
견습생 마법사 - 진은영  (0) 2020.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