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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1984 - 김소연


 

 

 

 

기름 얼룩에 절은 옷가지며 이불들 어머니는 개켰다 폈다만 하였다 풍경이 일그러진 집안 내력을 장마 끝에다 널어 놓았다 양지에 앉아서 동생은 젖어 못 쓰게 된 일기장을 태웠다 하얀 안개를 내뿜으며 저편에서 소독차가 달려왔다 꽁무니에는 아이들이 우루루 따라가고 있었다 휘어지고 모서리가 터진 장롱처럼 나는 골목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었다 소각되는 미래가 집집마다 연기로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곰팡이 호흡을 했다
아침도 어두웠다
조그만 비에도 우리는 어지러웠다
물의 발바닥이 밟고 다니는 낮은 위치를
더 낮게 낮추기도 했다
꿈들은 자주 누전되었다
고래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젖은 꿈을 꾸었다
물이 빠진 자국은 뚜렷한 선을 남겼고
우리는 해마다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주문을 외며
도배지를 발랐다

더 이상은 젖을 꿈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슨 힘일까,
벽지를 들고 곰팡이가 일어서고 일어서는 지칠 줄 모르는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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