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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소문 - 손미

 

 

 

 

 

 

네가 내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내가 쓰는 것과 읽는 것에 대하여 너의 발목을 타고 흐르는 나의 목소리에 관하여 내 하나뿐인 라디오에 대하여 까마귀처럼 너희들은 높은 곳에 모여 앉아 이야기한다고 들었다

  골목에서 우리가 마주쳤을 때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계속 내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내가 혼자 타는 기차에 대한 한 사람을 버리느라 보낸 시간에 관해 내가 잃어버린 것과 빨간 베개 위로 지나가는 밤들에 대하여 형광등을 켜고 자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들었다

  책장에 쌓인 읽지 않은 책들에 관하여 그것들을 모조리 팔아버린 나의 엄마와 내가 맨 커다란 가방에 대하여 너는 얘기한다고 들었다 가방 속에 구겨진 오래전 영화표, 영화표에 그어진 빨간 동그라미에 대하여 15번과 16번 자리에 대하여 무음으로 바꿔놓은 가방 속 휴대폰에 개 같은 년이라고 찍히던 문자에 대하여

  너는 아직 내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제 울리지 않는 전화에 대하여 이젠 한 번도 울리지 않는 전화에 대하여 내가 쥐새끼처럼 숨어서 흉보는 사람에 대하여 그러고도 여러 날 가지 않은 교회에 대하여 너희는 모여 앉아 이야기한다고 들었다

  나를 배신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에 대하여 아무도 밥을 먹어주지 않던 여고생과 날마다 담을 넘던 초록 교복에 대하여

  네가 내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차라리 니가 죽었으면 좋겠어 라디오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에 대하여 너의 발목으로 흐르는 내 작은 목소리에 대하여 후회로 여러 날을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조망하기 좋은 곳에 앉아 아직도 너는 내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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