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
여기 제가 왔습니다
당신이 불러주지 않아도
이렇게 와 섰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마지막 셈을 마쳤으니
부디 영수증 하나 끊어주시죠
제 것이 아닌 시간도 가끔씩 넘보며 훔치며
짐을 쌌다 풀었다
한세월 놀다 갑니다
지상에서 제가 일용한 양식
일용한 몸, 일용한 이름
날마다의 고독과 욕망과 죄, 한꺼번에 돌려드리니
부디 거둬주시죠
당신이 보여주신 세상이 제 맘에 들지 않아
한번 바꿔보려 했습니다
그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아
당신이 지어내고 엮으신 하루가 밤과 낮 나뉘듯
취했을 때와 깰 때
세상은
이토록
달라 보일 수 있다니
앞으로 보여주실 세상은 또 얼마나 놀라울가요
하느님 아버지
여기 제가 왔습니다
숙제 끝낸 어린애처럼 이렇게 손들고 섰습니다
부디 영수증 하나 끊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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