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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었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리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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