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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모형 - 임솔아

 

기린이 보고 싶어서

기린을 보러 간다.

 

기린은 보지 못하고

기린을 만든다.

 

기린을 지구 옆에 둔다. 지구 옆에

얼굴이 백팔십도 돌아간 채 웃고 있는

영웅이 있다.

 

지구가 보고 싶어서

지구를 돌린다.

 

바다가 이렇게나 더 많은데

해구가 아니라 지구가 되다니.

 

기린에 기린이 없어서

지구에 지구가 없어서

사람에 사람이 없어서

좋다.

 

보려던 것을 못 보면 가짜를 만들게 된다.

나는 사람 같은 모형이 된다.

 

이 세계도 어느 세계의 모형에 불과하다.

보고 싶은 세계를 보지 못해

이 세계를 만들던 손들이 지금

이 세계를 부수고 있다.

 

세계가 세계로부터 헛걸음을 한다.

나는 나를 모형들과 함께 세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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